![칼튼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300승 이상을 거둔 왼손 투수 4명 중 한명으로 329승을 거두며 전체 2위 기록을 갖고 있다. [사진출처=이베이]](https://cwn.kr/news/data/2022/12/23/p179565103058636_924.png)
트레이딩 카드 전문매체 스포츠 콜렉터스 데일리가 추천 카드로 사이 영 상(Cy Young Award)을 4번 수상한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투수 스티브 칼튼(Steve Carlton)의 야구 카드를 소개했다.
칼튼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300승 이상을 거둔 왼손 투수 4명 중 한 명으로 329승을 거두며 전체 2위에 올라있다. 칼튼은 24년 동안 활약하며 총 4,136개의 삼진을 잡았다. 6번 20승 이상을 올렸고 4번은 NL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그는 1972년 59승에 그쳤던 꼴찌팀 필리스에서 27승을 거둔 전무후무한 기록을 보유했다.
포수이자 오랜 팀 동료인 팀 매카버(Tim McCarver)는 “칼튼과 같은 왼손잡이는 투수로 활약하기 어렵다. 따라서 칼튼은 초인간적인 힘을 발휘해야 했으며, 실제로 경기 내내 초인간적인 힘을 발휘했다”라고 평가했다.
칼튼은 투구에 집중하고 싶어서 1973년부터 선수 생활이 끝날 때까지 언론에 말을 걸지 않았던 수수께끼 인물이기도 하다. 사이영상을 4번 수상한 칼튼은 1994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다음은 스포츠 콜렉터스 데일리가 추천한 칼튼의 대표 야구 카드다.
1961~1965 카드
칼튼은 북마이애미고등학교에 소속돼 있을 동안 많은 스카우트의 관심을 받았다. 1961년 2학년 때 칼튼은 5승 1패 평균자책점 0.47을 기록했다. 1961년 5월 22일 마이애미뉴스 기사에 따르면, Dade County의 챔피언을 결정하는 게임에서 칼튼은 0.96 방어율로 에디슨고등학교를 상대로 무안타를 기록했다. 고등학교 시절 유일한 정규 시즌 패배는 노를랜드고등학교에 1-0으로 패한 경기이다. 당시 칼튼은 13개의 삼진을 잡았다.
칼튼은 1963년 10월 세이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카디널스의 마이너 리그 시즌을 빠르게 통과하고 클래스 A 위니펙에서 활약했다. 그는 위니펙에서 17탈삼진을 기록한 후 텍사스 리그에서 경쟁하는 클래스 AA로 승격했다. 칼튼은 1965년 28세였던 프리츠 애클리(Fritz Ackley)와 함께 탑스 신인 카드(No. 477)에 등장했다.
1966~1967 카드
칼튼은 1966년 7월 31일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페넌트레이스에서 LA 다저스를 상대로 선발 출전하지만 승리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칼튼은 8월 5일 셰어 스타디움에서 뉴욕 메츠를 상대로 완승을 거두며 메이저 리그 첫승을 거뒀다. 1967년부터 칼튼은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그해 14승 9패 평균자책점 2.98을 기록했다.
1968~1971 카드
칼튼은 1968년 첫 번째로 올스타 게임에 참가해 6회 동안 무실점 투구를 선보이며 NL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1968년 시즌 이후 칼튼은 슬라이더를 자신의 주무기로 삼고 1969년까지 최고의 시즌을 보내며 17승 11패 평균자책점 2.17을 기록했다.
1969년 9월 15일 칼튼은 뉴욕 메츠를 상대로 19개의 삼진을 잡아내면서 메이저 리그 기록을 세웠다. 1970년 봄 계약 분쟁 후 칼튼은 힘든 정규 시즌을 보냈고 10승 19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는 1971년 자신의 첫 20승을 기록했다.
1972년 카드
1972년 6만 달러 계약을 요청한 칼튼은 협상이 이뤄지지 않아 2월 25일 필라델피아로 트레이드됐다. 이후 그는 최전성기를 보낸다. 그해 칼튼은 투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27승에 더해 평균자책점(1.97)과 삼진(310개)에서 리그 1위를 차지했다. 칼튼은 또한 투구 이닝(346.1), 완투 게임(30), 선발 게임(41)에서 NL 1위를 차지했다. 그는 그해 만장일치로 첫 번째 사이영상을 수상했으며, NL MVP 투표에서 5위를 차지했다.
1973~1983 카드
1973년 칼튼은 13승 20패를 기록했지만, 1976년부터 1978년까지 20승 7패, 23승 10패, 16승 13패를 기록했다. 그는 1977년 24표 중 17표를 얻어 두 번째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1980년 칼튼은 24승 9패 기록으로 세 번째 사이영상을 수상했고 필리스를 첫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는 선발(38), 투구(304), 삼진(286)에서 리그 1위를 차지했다. 이로써 그는 사이영상 투표에서 24표 중 23표를 얻어 세 번째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1982년 칼튼은 23승 11패의 기록으로 네 번째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선발(38), 완투(19), 셧아웃(6), 투구이닝(295.2), 삼진(286)에서 리그 1위를 차지한 그의 마지막 시즌이었다. 평균자책점은 3.10이었다.
1984~1988 카드
1982년과 1986년 사이에 칼튼은 놀란 라이언(Nolan Ryan)에게 역대 삼진 선두 자리를 빼앗겼다. 라이언은 칼튼을 제치고 1985년 4,000탈삼진을 기록했다. 반면 칼튼은 1986년 8월 5일 4,000탈삼진 클럽에 합류했다.
1987년 8월 8일 칼튼은 트윈스와 함께 9-2로 승리하며 마지막 승리를 거뒀다. 칼튼은 야구 이후의 삶 동안에도 야구 카드에 계속 등장했으며 다양한 제품에서 수많은 사인을 찾을 수 있다. 대부분은 매우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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