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혜영 칼럼] 마음먹은 만큼 행복하다

구혜영 논설위원

| 2025-12-01 15:18:59

에이브라함 링컨의 명언인 ‘사람은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행복하다’는 말은, 힘든 현실 앞에서 “마음먹는다고 뭐가 달라지나?”라고 되묻는 사람에게는 공허한 다짐처럼 들리기 쉽다. 그러나 같은 다리 밑에서 같은 비를 피하던 두 걸인의 삶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이 말은 결코 가벼운 위로나 긍정의 주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언제나 인생의 갈림길을 가르는 것은 재산이나 학벌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이기 때문이다.​

한 마을에 있는 다리 입구에는 이 다리를 세운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비가 서 있었다. 한 걸인은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돈 많은 놈들이 생색이나 낸 거지하며, 부자들의 위선과 불평등에 대해 중얼거렸다. 그에게 그 다리는 부자들의 성취물일 뿐이었다. 비를 피할 수 있게 해주는 구조물이 매일 머리 위에 있었지만, 그의 마음속 비는 단 한 번도 그치지 않았다. 세상을 향한 이런 부정적 해석은 하루를, 그리고 결국 생을 독으로 채우는 습관이 되었다.​

바로 옆에 있던 또 다른 걸인은 기념비에 있는 같은 이름과 같은 글자를 읽으면서도 전혀 다른 말을 중얼거렸다. 비를 피하게 해주고, 그늘을 주고, 안전한 길을 만들어주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기념비에서 누군가의 생색이 아니라, 공동체를 살리려는 선의를 보았다. 다리가 부자만의 상징이 아니라, 가난한 자신에게도 생명을 지켜주는 공공의 자산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 해석의 차이는 조용하지만 결정적인 균열을 만들었다. 기념비는 한 사람에게는 불평등의 증거였지만, 다른 한 사람에게는 언젠가 자신도 이런 다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소망을 자라게 한 씨앗이 되었다.​

세월은 두 사람에게 똑같이 흘렀다. 어느 날, 오래된 다리는 새 다리로 교체되고 기념비도 새로 세워졌다. 그 기념비에는 한때 다리 밑에서 비를 피하던 걸인의 이름이 새겨졌다. 넝마를 뒤집어쓰고 살던 그는 건재상 주인이 되었고, 자신의 재산 일부를 내어 새 다리 건설에 기부한 사람이었다. 다리에 고마움을 느끼며 살던 바로 그 걸인이었다. 반면 부자와 세상을 향해 이를 갈던 걸인은 여전히 그 다리 밑에 남아 있었다. 환경은 같았고, 시간도 공평하게 흘렀다. 그러나 한 사람은 마음으로 다리를 건너며 내일을 준비했고, 다른 한 사람은 마음속에 벽을 쌓으며 제자리에서 분노를 되풀이했다. 결국, 삶을 가른 것은 ‘운’보다, 세상을 해석하는 ‘눈’이었다.​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기념비’를 마주한다. 다른 사람의 성공일 수 있고, 성과일 수 있다. 이럴 때 어떤 사람은 뒤처짐의 증거로 읽고, 또 다른 사람은 기회의 신호로 받아들인다. 불공정한 현실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을 유일한 해석의 틀로 굳혀버리는 순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힘까지 함께 반납하게 된다. 문제는 현실 그 자체보다, 그 현실을 영원한 낙인처럼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마음의 눈’을 가지고 어떤 문장을 선택하냐에 따라 오늘을 보내는 방식과 내일 준비하는 자세가 함께 달라진다. 행복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그런 문장을 고르는 힘이 조금씩 자라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행복하다는 말은, 결국 지금 세상을 어떻게 해석하며 살고 있는가를 의미한다. 마음먹음으로 시작되는 행복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오늘 아침 마음 속으로 되뇌인 말 한마디로 조용히 시작되고 있을지 모른다.

구혜영 논설위원


현) 한양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현)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사회복지자원봉사 자문위원장


현) 정릉종합사회복지관 운영위원장


전) 광진구복지재단 이사장


전) 여성가족부 소관 농어촌육성재단 이사장


<자원봉사론> 3판 저자


<인간행동과 사회환경> 3판 저자


<그래서, 그래도 말단이고 싶다> 에세이집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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