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지방러 中] 서울, 기회의 땅과 현실의 무게 사이
신현준 기자
kyu0406@naver.com | 2026-05-27 11:43:09
기자는 대학 시절 처음 서울을 찾았다. 여의도에 늘어선 고층 빌딩과 바쁘게 오가는 직장인들의 모습은 낯설면서도 선명했다. 언젠가 서울에서 일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막연한 다짐도 그때 생겼다. 광화문광장, 한강, 롯데월드타워 등 서울의 상징적인 공간들은 지방 청년에게 ‘기회의 도시’라는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현재 기자는 그때의 바람처럼 서울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살이는 기대만큼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기자를 비롯한 많은 지방 출신 청년들은 서울 생활에 만족감을 느끼면서도, 높은 주거비와 생활물가, 낯선 도시에서의 고립감이라는 현실적 부담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취업과 학업을 이유로 서울에 오른 지방 청년들은 더 넓은 기회를 찾아 상경했지만, 월세와 식비, 교통비 등 생활비 부담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도시를 견디고 있었다. 본지는 서울에서 살아가는 지방 출신 청년들을 만나 이들이 체감하는 서울살이의 현실을 들어봤다.
서울은 지방 청년들에게 기회의 도시이지만, 동시에 현실적 고충을 감당해야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지방 출신 청년들이 바라본 서울의 가장 큰 장점은 기회의 폭이 넓고, 여가생활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많다는 점이다. 서울로 놀러 온 친구들은 한강, 광화문, 성수동 등 도심 곳곳을 둘러본 뒤 “한강에서 텐트를 치고 노을을 보니 정말 좋다”, “새벽까지 문을 여는 가게가 많다”, “서울에 직장이 많은데 나도 서울로 이직하고 싶다”는 반응을 보이곤 했다.
서울은 기업과 기관, 대학, 문화시설 등이 밀집해 있어 취업과 학업, 자기계발의 선택지가 지방보다 넓다. 특히 정보와 사람이 빠르게 모이는 도시라는 점도 지방 청년들에게는 큰 매력이다. 아울러 전시회와 공연, 강연, 세미나 등 다양한 행사가 수시로 열리고, 촘촘한 대중교통망 덕분에 차 없이도 이동이 비교적 편리하다.
실제로 통계청의 2024년 전국사업체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사업체 635만3,673개 가운데 서울 소재 사업체는 117만152개로 18.4%를 차지했다. 종사자 수 기준으로도 서울은 전체 2,573만1,105명 중 582만1,802명, 22.6%를 차지해 경기 다음으로 높은 비중을 보였다.
이 같은 수치는 서울에 일자리와 기업 활동이 집중돼 있음을 보여준다. 지방 청년들이 취업과 커리어를 이유로 상경하는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주 씨(27·경북권)는 서울살이 3년 차로 서울 생활에 대한 강한 만족을 드러냈다. 그는 “우선 서울은 다양한 일자리가 많아서 희망 직무에 지원할 수도 있고, 경험할 수 있었다”라며 “서울에서 활발한 구직활동과 개인의 진로 탐색에도 도움이 됐다”라고 밝혔다.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고 있는 최 씨(21·경북권)는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인터넷이 발달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차이가 크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서울에서 생활해보니 학창 시절의 나는 ‘우물 안 개구리’에 가까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상경한 지 6년 차인 한 씨(25·경북권)는 “AI나 첨단 기술 분야는 트렌드가 워낙 빨라 서울에 있는 것만으로도 고급 정보를 흡수하기 유리하다”라며 “서울 상경이 진로에 큰 도움이 됐다. 수준 높은 연구 환경과 인적 네트워크를 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경할 가치는 충분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이 제공하는 기회의 폭만큼, 지방 청년들이 감당해야 하는 생활비와 주거비 부담도 컸다. 생활·주거비 문제는 지방 출신 청년에게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서울에 거주하는 청년 전반이 겪는 공통된 부담이기도 하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서울 기준 대표 외식 메뉴 평균 가격은 냉면 1만2615원, 비빔밥 1만1692원, 삼겹살 2만 1321원, 김치찌개 백반 8654원, 칼국수 1만38원, 김밥 3800원 수준이다. 한 끼 식사를 외부에서 해결할 경우 1만 원 안팎의 비용이 드는 셈이다.
특히 식비 부담에 취약한 대학생과 사회초년생들은 한 끼 외식비가 1만 원 안팎에 이르자 ‘생존형 소비’를 찾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최근 2030세대 사이에서는 저렴한 식당 정보를 공유하는 ‘천사밥’, ‘거지맵’ 등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원룸 월세 상승도 지방 청년들의 주거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지난달 23일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3월 계약된 서울 전용면적 33㎡ 이하 원룸의 평균 월세는 71만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준으로 2025년 월별 자료를 종합하면, 서울 전용면적 33㎡ 이하 연립·다세대 원룸의 보증금 1000만 원 기준 평균 월세는 연평균 70만 원 수준이었다.
주 씨는 “서울에서는 돈을 모으기 쉽지 않다 보니 주식투자를 하거나 금리가 높은 적금 상품을 찾는 등 돈을 관리하려는 습관이 생겼다”면서도 “교통비와 식비로 빠져나가는 비용을 고려하면 모은 돈을 유지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한 씨는 “월세가 30만~40만 원 안팎인 비수도권 1인 가구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서울의 주거비 부담을 더 크게 체감한다”며 “이런 차이가 지속되다 보니 지방에서 올라온 청년들과 비수도권에 남은 친구들 사이에 저축 규모 차이도 벌어지는 것 같다”라고 했다.
서울은 지방 청년들에게 기회의 도시이자, 동시에 버텨야 하는 도시다. 더 많은 일자리와 문화 인프라가 집중된 만큼 청년들은 서울로 향하지만, 그 기회를 붙잡기 위해 감당해야 할 비용도 적지 않다. 지방 청년들의 서울살이는 개인의 선택을 넘어, 지역과 수도권 사이의 기회 격차를 보여주는 단면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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