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가 몰아치는 미국 대륙의 겨울 길 위, 묵묵히 발을 떼는 이들이 있다. 텍사스 포트워스에서 워싱턴 DC까지 무려 2,300마일(약 3,700km)을 오직 두 발로 횡단 중인 승려들이다. 그들이 걷는 이유는 분열된 세상에 평화의 씨앗을 심기 위해서다. 이 여정의 이름은 단순하다. "Walk for Peace." 말 그대로, 평화를 위한 걷기다.
걷는다는 것은 속도를 늦춘다는 뜻이고, 속도를 늦춘다는 것은 상대의 고통을 들을 시간을 만든다는 뜻이다. 하루하루 SNS를 통해 전해지는 영상은 갈등과 대립의 극한을 달려가는 미국의 모습과 대비되어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긴다.
눈보라를 뚫고 이어져 온 2,300마일의 여정이 이제 마지막 장을 향하고 있다. 이번 주 워싱턴 D.C.와 메릴랜드 일정을 끝으로 108일이 넘는 순례를 마무리한다. 2월 10일부터 12일까지, 워싱턴 대성당의 종교간 의식, 국회의사당 인근 평화행진, 링컨기념관에서의 마무리 집회, 그리고 메릴랜드 주 의사당 방문까지 이어지는 일정은 이 긴 순례의 절정을 이룬다. 눈길 위에서 시작된 발걸음이 마침내 미국의 수도에 닿는 순간이다.
길 위 2,300마일을 걷는 승려와 그를 대하는 미국 시민들의 모습을 보며 한반도의 냉기를 되돌아보니 가슴이 저리고 뼈아프다. 그들은 정치적 실익도, 제도적 권한도 없다. 그럼에도 추위를 감수하며 걷고 있다. 평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승려들이 영하의 추위 속에서도 시민들의 환대 덕분에 따뜻함을 느끼고, 시민들도 순례가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온기를 채우듯, 남과 북 역시 평화의 길 위에서 서로를 환대하는 경험을 축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신뢰는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반복되는 만남과 공동의 기억이 쌓일 때 비로소 자산이 된다.
평화는 책상 위 논리나 정치적 수사로 완성되기보다, 부르튼 발바닥, 낮은 곳을 향한 기도, 그리고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함께 걷는 연대 속에서 구체화된다.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폐막 미사를 임진각에서 개최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분단의 상징인 임진각에 전 세계 청년들이 모여 평화를 노래한다는 상상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한반도의 아픔을 세계적 연대의 자리로 확장하는 상징적 노력이다. 그러나 상징은 헌신 위에 설 때 힘을 얻는다.
지금 우리의 정치 현실은 교착 상태에 가깝다. 남북 관계는 신뢰를 축적하지 못한 채 긴장과 단절을 반복하고, 국내 정치 역시 극단적 대립의 언어에 갇혀 있다. 외교적 돌파구도, 정치적 합의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시대가 어둡고 지쳐갈 때, 늘 어렵고 힘든 자리는 종교인들의 몫이었다. 군사독재 시절 인권을 외치던 성직자들, 분단의 장벽을 넘어 교류를 시도했던 종교 지도자들, 역사적 상처를 품고 화해를 선언했던 종교인들의 결단은 제도 밖에서 시대를 움직였다. 그들은 정치가 회피한 자리, 권력이 외면한 목소리를 먼저 감싸 안았다. 종교는 원래 세속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믿음으로 실천하는 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종교는 여전히 사회 안에 존재하지만, 시대의 막힌 숨통을 먼저 열어젖히는 선도적 역할은 상대적으로 약해진 듯하다. 제도 안으로 편입되면서 오히려 안전지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분열의 시대에 화해의 다리를 놓기보다 각자의 진영 안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때다.
지금이야말로 종교인들이 다시 앞장서야 할 시간이다. 이념의 장벽 앞에서 먼저 손을 내미는 것, 적대의 언어가 난무할 때 대화의 문을 여는 것, 정치적 계산이 불가능해 보일 때 오히려 더 과감하게 평화의 길을 제시하는 것. 그것이 종교가 해온 일이고, 지금 우리 시대가 간절히 요청하는 역할이다.
이제 종교인들이 직접 분단의 현장을 걸어야 한다. 갈라진 휴전선을 따라, 민족의 상처를 따라, 잊혀진 이산가족의 한을 따라 걸으며 기도하고 화해를 외치는 순례가 필요하다. 남과 북의 그리고 전세계 종교인들이 함께 모여 평화를 위한 기도회를 열고, 교류의 장을 마련하고, 작은 만남부터 시작해 큰 화해로 나아가는 과정을 몸소 보여줘야 한다. 정치가 할 수 없는 일을 종교가 먼저 시도할 때, 그것이 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촉매가 될 수 있다. 2027년 서울세계대회 이전에 한반도에 평화의 훈풍을 불러 일으켜야한다. 바람이 없어도 우리가 바람이 되어 달려가야 한다.
눈길 위에 새겨진 2,300마일의 발자국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감동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길을 낼 것인가. 워싱턴과 메릴랜드에서의 마지막 일정이 끝나면 행진은 마무리되겠지만, 평화를 향한 질문은 끝나지 않는다.
정치가 멈춰 있을 때, 종교가 먼저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 한다. 갈등의 언어가 난무할 때, 종교가 침묵 속에서 먼저 기도하고 먼저 걷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종교인들이 당파를 넘어, 이념을 넘어, 남북의 경계를 넘어 평화의 순례자로 나설 때, 비로소 우리 사회에도 희망의 씨앗이 뿌려질 것이다.
평화는 제도만으로 오지 않는다. 누군가의 희생이 그 문을 연다. "Walk for Peace." 평화는 고정된 목적지가 아니라 걸어가는 길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 마지막 발걸음이 워싱턴에 닿는 이번 주,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우리의 길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분단을 넘어서는 지속 가능한 평화의 여정으로 확장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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