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이란 종전 양해각서 합의로 중동발 원유 공급 우려가 완화되면서 국제유가는 5% 넘게 급락했다. 16일 기준 ICE에서 8월 인도분 브렌트유는 전장보다 5.1% 하락한 배럴당 78.96달러를 기록하며 석 달 만에 최저 수준으로 내려왔다.
이 흐름이 가장 먼저 반영된 곳은 항공권이다. 7월 발권 국제선 항공권에는 유류할증료 19단계가 적용된다. 이는 6월의 27단계보다 8계단 낮아진 수준이다.
유류할증료 산정 기준인 5월 16일부터 6월 15일까지의 싱가포르 항공유 평균값이 갤런당 338.30센트로 떨어진 영향이다. 대한항공의 7월 국제선 유류할증료는 편도 기준 4만6400원에서 34만4000원으로 조정된다. 인천∼뉴욕 같은 장거리 노선을 왕복으로 이용할 경우 부담이 최대 21만5000원 줄어드는 셈이다.
반면 주유소 기름값은 좀처럼 눈에 띄게 내려가지 않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국제유가가 급락했다는데 왜 휘발유값은 그대로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차이의 핵심은 가격 반영 구조와 속도에 있다. 항공 유류할증료는 한 달 단위로 항공유 평균값을 기계적으로 반영한다. 국제 항공유 가격이 하락하면 다음 달 할증료 단계가 비교적 빠르게 낮아진다.
하지만 국내 주유소 가격은 국제유가 하락분이 곧바로 반영되지 않는다. 정유사가 수개월 전 도입한 원유 재고, 정제 과정, 유통 단계, 주유소 마진 등을 거쳐 소비자 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 기준 6월 둘째 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ℓ당 2009.9원으로 전주보다 0.5원 내리는 데 그쳤다. 5월 초 2010원을 넘어섰던 휘발유 가격은 4주 연속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2000원대에서 횡보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주유소 가격이 실제로 내려가기까지 최소 2∼3주의 시차가 필요하다고 본다. 국제유가 하락이 정유사 공급가격과 주유소 판매가격을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다.
더 근본적인 변수는 국제유가가 전쟁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키움증권은 미·이란 종전 협상으로 유가의 상방 리스크는 완화됐지만, 전쟁 이전 수준인 WTI 배럴당 60달러 안팎까지 내려갈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단기적으로는 70달러 후반에서 80달러 중반 구간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해협 내 기뢰 제거 작업에만 몇 주에서 최대 6개월까지 걸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쟁 이전에는 하루 약 130척의 선박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지만, 종전 양해각서 발표 이틀째 통과 선박은 14척에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원유 수송 정상화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상황은 완전한 종전이라기보다 60일 후속 협상이 진행되는 잠정 안정 국면에 가깝다. 합의가 흔들릴 경우 유가가 다시 반등할 수 있는 불확실성도 남아 있다.
환율도 국내 유가 하락 체감을 늦추는 요인이다. 우리나라는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고, 특히 중동산 원유 비중이 크다. 원·달러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국제유가가 내려가더라도 원화 기준 도입 비용이 크게 줄지 않을 수 있다.
1500원대에 머무는 원·달러 환율은 원유 도입비 부담을 키워 국제유가 하락 효과를 일부 상쇄할 수 있다. 정유사들이 이미 수개월 동안 도입선 다변화를 추진해온 만큼, 이번 합의만을 이유로 즉시 중동산 원유 도입을 확대하기도 쉽지 않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정리하면 항공권 유류할증료는 매월 평균 가격을 반영하는 구조 덕분에 7월부터 인하 효과를 비교적 빠르게 체감할 수 있다. 반면 주유소 기름값은 원유 도입과 정제, 유통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빨라야 2∼3주 뒤부터 완만하게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의미 있는 하락은 호르무즈 해협 통항량 회복과 걸프 산유국의 생산 정상화가 확인되는 하반기에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키움증권은 연말께 WTI가 70달러 초반대로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당분간 소비자가 체감하는 국내 기름값 하락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연합뉴스, AI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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