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AI시대 디지털포용]①한국 사회 '디지털포용' 어디까지 왔나

주진 기자 / 2025-01-06 18:26:31
사람 중심의 디지털포용으로 패러다임 전환 필요
'전국민의 디지털 권리 보장' 디지털 소외 없어야
디지털포용, 사회적·경제적 가치 아울러야
공공에서 민간에까지 확대 시행..실효성 담보해야

디지털, 인터넷, 인공지능(AI) 등 기술 혁신이 가속화되면서 디지털 격차와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부작용은 날로 커지고 있다. 고령자·장애인·저소득층 등 기존의 기술·정보 취약계층을 넘어 디지털 사용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급속도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 혁신은 사람에 가치를 두고 모든 구성원을 배려해야 한다. 또 기술패권의 결과물이 소외와 불평등이 아닌 협력과 공존으로 이어지는 '디지털포용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기술과 정보 접근, 활용 역량 강화 등으로 디지털 격차를 줄이고 포용적 성장을 이루기 위한 법과 제도, 정책 개발에 나서야 한다. 디지털 기술을 사용할 때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디지털포용문화도 조성돼야 한다. 본지는 이번 기획시리즈를 통해 디지털포용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정부 정책, 기업 및 시장의 역할, 시민사회가 함께할 수 있는 실행 가능한 비전과 전략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Ⅰ편집자주

▲지난 해 4월 23일 서울 종로구 서울노인복지센터 탑골미술관에서 열린 삼성 시니어 디지털 아카데미 개소식에서 어르신들이 가상으로 마련된 주민센터 키오스크 체험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오늘날 디지털 기술은 우리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 됐다. 스마트폰으로 길을 찾고, 쇼핑하고, 키오스크로 음식을 주문하고, 모바일 뱅킹으로 간편하게 돈을 보낸다.

하지만 고령층·장애인·취약계층 등 디지털 기술에 접근하기 어려운 소외계층은 이러한 편리한 혜택을 누릴 수가 없다. '기술 진보의 역설'이다.

서울디지털재단이 지난 2023년 조사한 '서울시민 디지털역량실태'에 따르면 고령층 59.6%, 장애인 60.9%가 '키오스크를 이용할 때 어려움이 있다'고 응답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 결과를 봐도 지난해 기준 스마트폰, 키오스크 등 디지털기기를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을 뜻하는 디지털정보화 역량 수준은 고령층이 55.3%로 장애인 75.6%보다 낮게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과기부가 국민 3000명을 대상으로 디지털 질서 정립을 위한 정책 수립을 위한 대국민 인식 조사를 한 결과 국민 93.3%가 한국사회가 디지털 심화시대에 있다고 인식했으며, 52.2%는 자신이 디지털 심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한다고 평가했다. 이를 보면 국민의 절반 가량은 자신 스스로 디지털시대 혁신 기술에 대한 접근성과 활용능력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은 디지털 심화시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딥페이크 활용 범죄 대응', '디지털 취약계층에 대한 대체수단 제공', '인공지능의 안전성 확보' 등을 꼽았다.

이 같은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디지털포용'이라는 용어가 여전히 우리에게 낯선 것은 현저히 낮은 정책 체감도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그래픽=과기부

◇ 지난해 12월 '디지털 포용법' 제정안, 국회 의결..내년 1월부터 시행

디지털포용은 모든 국민이 정보통신 기술에 접근할 수 있고 이를 이용해서 디지털 경제와 사회에 기여하고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정책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디지털포용 현주소는 어디일까.

문재인정부 시절인 지난 2020년 디지털포용 추진계획이 발표되며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이 계획에 따르면 누구나 디지털 역량을 갖추도록 교육을 강화하고, 취약계층의 디지털 기술과 서비스 접근성을 향상시키며, 포용적 디지털 기술을 확산해 취약계층의 사회참여와 일자리를 지원, 시민사회와 기업 등이 주도하는 협력네트워크를 구성해 시민주도 디지털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도록 했다.

하지만 정부의 디지털포용정책은 고령층·장애인·농어민·저소득층 등 4대 정보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시혜적 접근에서 출발해 시작부터 꼬였다. 디지털포용을 산업적 관점에서 진흥할 것이냐 규제할 것이냐로 접근하는 이분법적 시각도 낳았다. 그러다보니 디지털포용 제정법은 국회에서 논의만 무성하다 공회전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포용을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의 공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2대 국회 들어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과 박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관련 법안을 발의해 속도가 붙었고, 마침내 지난해 12월 26일 '디지털포용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이르면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

이번에 제정된 디지털포용법은 국민 누구나 차별 없이 디지털 기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자는 취지가 담겼다. 디지털포용의 개념을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차별이나 배제 없이 지능정보기술의 혜택을 고르게 누릴 수 있는 환경'으로 정의했다. 기존의 장애인, 고령자 등으로 국한된 디지털 취약계층의 정의를 확대해, 디지털 사용에 어려움을 느끼는 국민 누구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사회 모두가 디지털(지능정보) 서비스 및 제품에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시책을 마련해야 하며,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대체수단을 제공하도록 규정했다. 또한 디지털역량센터를 지정하고 표준 교재·프로그램 등을 개발해 지역 주민들이 디지털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최근 급격하게 확대된 키오스크의 편리한 사용을 위해 키오스크 제조-임대사업자의 이용 편의 제공 의무화가 신설됐다. 높낮이 조절, 음성 지원, 점자 표기 등을 지원하는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설치 의무를 키오스크 제조사와 임대업자에게도 부과한 것이다.

키오스크를 제조·임대하는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디지털 취약계층도 쉽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당한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정당한 조처를 하지 않는 경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시정을 명할 수 있고,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또한 디지털포용 정책 수립 과정에서 기업과 시민단체의 정책 참여를 촉진하고 민간의 자발적인 활동을 지원하도록 했다. 디지털포용 분야의 기술 개발과 산업 육성을 촉진하기 위해 디지털포용 산업·기술·서비스 현황을 분석해 연구개발(R&D) 투자 방향을 수립한다. 민·관 협력 사항을 발굴하고 장기적 성장 동력을 지원하고 수출 확대 등을 추진한다. 이 밖에도 정부의 신규 서비스·제품 등에 디지털포용 영향평가를 통해 공공 영역의 디지털 차별·소외를 예방한다.

'디지털포용법'을 대표발의한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AI·디지털 기술이 사회 전반에 전례 없는 속도로 확산됨에 따라 범정부 차원의 체계적·종합적인 디지털포용 정책이 시급하다"며 "이번에 제정된 디지털포용법이 전 사회 분야에 있어 진정한 디지털 혁신을 실현하게 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26일, 전 국민의 디지털 권리 보장을 위한 '디지털포용법' 제정안이 국회에서 의결됐다. 이 법은 디지털 취약계층의 정의 확대 및 지원, 디지털역량센터 지정과 표준 교재 보급, 사용하기 쉬운 키오스크 확대를 위한 제조사의 의무 신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사진=뉴시스

◇ 디지털 포용정책, 공공에서 민간에까지 확대 시행해야

디지털포용은 큰 틀에서 보면 환경·사회·지배구조(ESG)의 맥락과 맞닿아있다는 지적이다. 그만큼 복합적이고 거시적이다. 디지털포용위원회와 같은 범정부 컨트롤타워가 설립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 지난 21대 국회때 강병원 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디지털포용법에는 디지털포용위원회를 설치·운영하는 규정을 둠으로써 관계 부처의 협력을 통해 디지털포용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디지털포용 정책은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주무기관인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도맡아 이끌어가고 있다. 디지털포용은 여러 부처 간의 협력이 필수적인데도 산업을 관장하고 있는 부처들이 업무 주도권을 갖고 있어 기술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종성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장이 지난 2일 발표한 신년사를 보면 "새로 제정된 디지털포용법에 따라 디지털 포용 전문기관으로서 전 국민의 AI 활용 역량 강화와 취약계층을 위한 맞춤형 디지털 교육을 확대하고, 또 사회문제 해결형 디지털 기술을 적극 발굴해 더욱 따뜻한 디지털 사회를 구현하겠다"고 했다. 결국 기술적 측면에 정책의 방점을 둔 셈이다.

전문가들은 디지털포용 패러다임을 확산시키고 부처 간 협업을 관장할 범정부 컨트롤타워가 설치 운영돼야 하고, 향후 지속 가능한 디지털포용 사회혁신 생태계 조성을 위해 민관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아울러 디지털포용 정책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 공공은 물론 민간에까지 영역을 확대 시행하고, 이를 준수토록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럽연합(EU)의 '접근성법(EAA)'은 장애인‧고령자 등 정보취약계층의 디지털 정보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접근성 요건을 촘촘하게 설정하고, 공공은 물론 민간 사업자들까지 이를 준수토록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아울러 EU 접근성법과 회원국의 이행입법들은 올해 6월부터 발효될 예정인데, 이는 회원국이 제조 또는 유통하는 것뿐만 아니라 EU 역내에 수입 또는 제공되는 디지털 기기 및 서비스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국내 기업과 산업에 대한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추세에 맞춰 우리 정부의 디지털포용 정책도 더욱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봉근 서울대학교 교수는 "유럽 EAA의 실효성은 인권 보장을 명문화한 것이 아닌, 기업의 시장 진출 장벽을 해소하는 데 있다"며 "국제적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표준화된 접근성 기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CWN 주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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