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옥시아·WD 합병 반대…日 언론보도에 "韓정부 압박 안 받아"

[CWN 소미연 기자] SK하이닉스가 정치권 이슈로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반도체 벨트'를 둘러싼 여야의 격전 예고에 자칫 불똥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의 필요성에 여아 이견이 없지만, 정권심판론을 내세운 야당의 선거 전략에서 불쏘시개로 쓰이는 게 아니냐는 물음표가 붙고 있다.
실제 업계에서도 복잡한 심경을 보인다.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 방문을 환영하면서도 정권심판론이 부각된 7일 현장 유세 일정에 포함된데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날 일정을 앞두고 복수의 언론에선 반도체 산업 지원 강화를 강조하기 위한 당 차원의 행보, 반도체 벨트 유권자들의 표심을 겨냥한 선거 전략으로 해석하며 사실상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논란을 빚은 정부 비판의 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대표는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에서 '종합 반도체 강국 실현을 위한 정책간담회'를 열고 경기 남부·동부권에 '반도체 메가시티' 및 U자 형태의 RE100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스템반도체 인프라 확충 등을 공약했다. 이를 위한 과감한 규제개혁과 세제지원도 약속했다. 정부 R&D 예산 삭감과 차별화되는 정책 방향을 제시하며 반도체 기업을 포함한 '과학계 기(氣) 살리기'에 주력한 셈이다. 이 대표는 "반도체 초강대국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겠다. 메모리와 비메모리를 포괄하는 육성정책으로 종합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2024년 예산 편성 과정에서 R&D 예산을 전년 대비 4조6000억원(14.7%) 삭감된 26조5000억원으로 확정했다. 미래 투자로 평가되는 R&D 예산이 삭감된 것은 1991년 이후 33년 만에 처음이다. 논란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위수여식에서 일어난 '입틀막' 사건으로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항의하던 졸업생이 경호원들에게 강제로 끌려나갔다. 이후 KAIST 동문들은 대통령경호처를 경찰에 고발했다.
정부는 논란이 계속되자 입장을 바꿨다. 과학계 카르텔, 시스템 혁신을 예산 삭감의 필요성으로 강조해오던 것과 달리 내년도 예산 대폭 증액을 공언했다. 관련 사업을 관리하기 위한 협의체도 출범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뿐만 아니다. 예산 삭감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조성경 1차관을 포함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 3명을 동시에 교체했다. 과학계 달래기 차원의 경질성 인사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정부 정책 방향이 재조정되면서 과학계와 전면전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 모양새나 총선 변수는 여전하다. 더욱이 SK하이닉스는 정부와 얽힌 사건이 이번이 두 번째다. 최근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WD) 합병 관련 한미일 정부 당국자가 SK하이닉스를 설득하는 작업이 이뤄졌다는 내용이 일본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입장 자료를 내고 "사실이 아니다. 한국 정부의 압박이나 설득을 받은 적이 전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SK하이닉스는 연합 컨소시엄을 통해 키옥시아에 약 4조원을 간접 투자한 상태다. 때문에 양사 합병에는 SK하이닉스의 동의가 필요하다. SK하이닉스는 키옥시아와 협력 가능성을 열어놨지만 합병 건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키옥시아와 WD가 합병하면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에서 3위로 밀려날 수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점유율은 삼성전자(31.4%), SK하이닉스(20.2%), WD(16.9%), 키옥시아(14.5%) 순이다. 치열한 시장 경쟁 속에서 연내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1기 공장 착공을 준비 중인 SK하이닉스는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한 때이다.
CWN 소미연 기자
pink2542@cwn.kr
[ⓒ CWN(CHANGE WITH NEWS).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