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빅피처①] 재계 2위 일군 카멜레온 리더십

소미연 기자 / 2024-09-02 21:52:13
'딥 체인지'로 경영 위기 극복, 'ABC' 전략 전환 통한 기회 모색
SK하이닉스 키워낸 '패기'와 '지성', 성공 DNA로 진화…AI 공략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위기에 강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발발한 이듬해 총수에 오른 그는 비상경영으로 파고를 넘었고, 그룹 해체 위기까지 몰렸던 소버린 사태에선 투명경영을 앞세워 주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보다 더 심각하다는 현 글로벌 복합 위기 속에서도 혁신경영으로 국내 재계 서열 2위를 꿰찼다. 갑작스레 타계한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의 빈자리를 메운 것은 물론 국내 대표 기업인으로 자리매김했다는데 이견이 없다. 최 회장은 9월 1일 취임 26주년을 맞았다.|편집자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변화'를 강조했다. 고강도 쇄신으로 '서든 데스(돌연사)'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 준비에 박차를 가하자는 의미가 담겼다. 사진=SK

[CWN 소미연 기자] "변화 없이 미래 없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오랜 화두다.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된 쇄신론이다. 핵심은 '딥 체인지(Deep Change·근본적 변화)'다. 취임 직후부터 "혁신적인 변화를 할 것이냐, 천천히 사라질 것이냐"며 구성원들의 경각심을 일깨웠던 최 회장은 "변화하지 않는 기업은 슬로우가 아닌 서든 데스(Sudden Death·돌연사)가 될 수 있다"며 그룹 체질 개선에 팔을 걷어붙였다.

성과는 숫자로 증명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SK그룹의 자산 총액은 2023년 말 기준으로 334조3600억원을 기록하며 재계 서열 2위 자리를 사수했다. 앞서 SK그룹은 2022년 총자산 300조 시대를 열며 현 위치에 올라섰다. 상위 5개 대기업집단 순위가 바뀐 것은 12년 만의 일이다. 특히 최 회장이 취임한 1998년(약 32조8000억원) 대비 10배 이상 자산이 증가하며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다. 수출액도 껑충 뛰었다. 한국 전체 수출액의 10%를 SK그룹에서 책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장 비결은 사업 포트폴리오 확대가 첫손에 꼽힌다. 정보통신, 에너지·화학에 편중됐던 사업 구조가 반도체와 소재, 바이오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새로운 수익 창구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기업 이미지도 달라졌다. 내수(內需) 기업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며 세계 시장 공략에 나섰다. 최 회장이 기회가 될 때마다 강조해온 '변화'다. 여기에 속도전과 확실성을 주문했다. 환경 변화가 그만큼 빠르고 위험하단 뜻이다. 재계에선 최 회장의 민첩한 대처와 미래를 준비하는 혜안이 SK그룹의 성장 동력을 만든 것으로 평가한다.

특히 최 회장의 리더십을 설명하는 대표적 사례가 SK하이닉스 인수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상반기 매출액 28조8529억원, 영업이익 8조3546억원을 달성했다. AI 훈풍을 타고 HBM(고대역폭메모리)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이로써 그룹 전반의 수익성을 끌어올리며 SK텔레콤과 함께 핵심 캐시카우(수익창출원)로 자리매김했다. 지금이야 효자 계열사로 불리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2012년 인수할 당시만 해도 채권단 관리를 받던 부실기업으로, 전문성 부족과 수익성 저하를 우려한 임원진의 반대가 컸다. 그럼에도 최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최 회장은 인수를 반대하는 임원들에게 "나의 애니멀 스피릿(animal spirit·야성적 충동)을 믿어달라. 인수 가격은 중요하지 않고, 인수 후의 기업가치가 중요하다"며 끈질기게 설득했다. 결국 SK그룹은 입찰 마감 7분을 남겨두고 인수 제안서를 제출했다. 이 같은 불굴의 도전 정신은 폐허 위에 SK그룹의 전신 '선경직물'을 일군 고(故) 최종건 창업회장과 19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인수 당시 "회사가 아닌 미래를 샀다"며 고가 인수 논란을 정면돌파한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을 떠올리게 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이 올해 1월 첫 현장경영으로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를 찾은데 이어 8월에도 재방문해 사업 추진 현황을 점검했다. 사진=SK

이제 반도체 사업은 SK그룹의 미래 청사진에 중요 역할을 맡는다. 그룹 전체 사업 방향을 보여주는 이른바 'BBC(배터리·바이오·반도체)' 전략이 최근 'ABC(인공지능·배터리·반도체)' 전략으로 전환될 때도 빠지지 않았다. 최 회장은 SK하이닉스 인수 이후 매년 조 단위의 연구개발비를 쏟아부었다. 이천 M14(2015년), 청주 M15(2018년), 이천 M16(2021년) 신규 공장을 차례로 건설하며 사업을 확장했고, 현재 경기도 용인에 총 120조원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 중이다.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자산 총계 100조원 이상을 기록하며 그룹 전체 자산 총액에서 3분의 1가량을 차지한다.

다음 집중 공략 분야는 AI(인공지능)다. 기존에 주력해 온 배터리와 바이오 사업은 속도 조절을 택했다. 업황 회복과 수익성이 투자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AI는 새로운 기회이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생존 수단으로 판단했다. 최 회장은 올해 열린 경영전략회의(6월), 이천포럼(8월)에서 "그룹 보유 역량을 활용해 서비스부터 인프라까지 AI 밸류체인 리더십을 강화해야 한다", "중간에 덜컹거리는 과정이 있겠지만 AI 산업은 우상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며 AI 시대에 살아남을 전략 구상에 집중했다. 경영전략회의, 이천포럼은 CEO세미나(10월)와 함께 SK그룹의 3대 전략회의로 통한다.

SK그룹은 AI 반도체 핵심 부품 HMB을 개발·생산하는 SK하이닉스에 오는 2028년까지 총 103조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앞서 SK하이닉스 본사 이천캠퍼스를 방문한 최 회장은 "AI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위기에서 기회를 포착한 기업만이 살아남아 기술을 선도할 수 있다"며 차세대 수익 모델에 대한 고민을 전했다. 기술 경쟁력 확보와 집중 투자 당부는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의 AI 데이터센터 사업으로 이어졌다. 해당 사업에는 3조4000억원이 투입될 계획이다.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을 주축으로 그룹 계열사들도 'AI 전환'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은 시대 변화에 발맞춰 변신을 거듭해왔다. 섬유회사에서 에너지·통신 기업으로 탈바꿈한데 이어 첨단기업으로 재도약에 성공하며 미래를 위한 과감한 행보를 보여줬다. 지난해 창립 70주년을 맞아 발간한 창업회장과 선대회장의 어록집('패기로 묻고 지성으로 답하다') 제목처럼 SK그룹의 DNA는 '패기'와 '지성'이라 할 수 있다. 이를 계승한 최 회장이 '혁신'을 더하며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CWN 소미연 기자
pink2542@cw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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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미연 기자

소미연 기자 / 산업1부 차장

재계/전자전기/디스플레이/반도체/배터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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