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호 칼럼] 과학의 시작과 과학 지식 생산양식의 변화 ②

신현준 기자 / 2026-03-19 08:52:35

과학사에서 살펴볼 때 과학기술은 세 번의 맥락적 변환이 발생했다. 첫 번째는 17세기 후반 과학혁명과 함께 처음으로 과학이라는 영역이 사회의 다른 부문과 구분되어 분화되기 시작했고 과학기술 지식을 생산하는 주체로서 과학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19세기 근대 시민사회가 등장하여 발전하기 시작하고 근대국가가 확립되던 시기에 하위체계로서 분화⸱발전한 과학기술은 ‘순수과학’과 ‘합리성’에 기반한 전문화가 이루어졌고 국가에 의해 지원받고 과학공동체에 과학기술 지식 생산이 위임되는 방식으로 맥락화되었다.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는 분과 학문, 연구조직, 연구절차와 관행, 동료평가, 논문과 학회 등이 확립되었다. 1970년대가 지나면서 세 번째 맥락적 변환이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세 번째 변환은 과학기술 지식이 선진 자본주의 경제의 생산과 권력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로 되어감에 따라 더 가속화되고 있다. 과학기술 지식 생산이 사회경제적 목표와 상관성을 가져야 한다는 명제가 세 번째 변환의 핵심적인 패러다임이다. 과학기술 지식 생산에 상관성이 요구됨에 따라 사회적 맥락화가 심화되면서 실질적이고 가장 중요한 후원자인 국가와의 결속이 강해졌다. 민주주의 대중은 국가와 결속된 과학기술에 민주화를 요구한다. 과학기술이 사회와 멀리 떨어져 있고 사회와의 연결과 접점이 국가의 특정 기관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던 시대와는 달리 이제 과학기술이 사회 전 분야와 직접적으로 접합되기 시작했다. 과학기술은 생활세계와는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자기조절 메커니즘을 갖고 있으므로, 하위체계와 생활세계, 하위체계 간의 구조적 결속과 접합은 심각한 문제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1)근본적 가치의 충돌, 2)위험도 평가, 3)이해관계 조정 등 과학기술과 관련된 전형적인 세 가지 갈등 유형은 과학기술의 세 번째 사회적 맥락화가 현재에도 계속 진행 중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앞의 칼럼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 맥락적 변화를 소개했고, 이번 글에서는 과학기술의 세 번째 맥락적 변화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칼럼의 말미에서 과학의 역사가 도달한 그 끝에 나타난 ‘기술파시즘’을 간략히 살펴볼 것이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대학은 국가 엘리트를 양성하기 위한 소수의 전유물이었으며, 그 규모가 작았기에 국가의 재정적 부담 또한 적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며 기술 주도 경쟁이 심화되고 세계화가 도래하면서 대학과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은 근본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의 결정적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체제의 수립이었다. 1945년부터 1950년 사이, 미국은 국가혁신체제를 재무장하며 연방정부 차원의 연구개발 재정 지원을 유례없는 수준으로 확대했다. 이때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이 연방 실험실을 넘어 산업체와 대학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미국의 대학은 기초연구의 핵심 수행자로서 국가 과학기술 발전의 선봉에 서게 되었다. 유럽 국가들 역시 1960년대 들어 미국이 거둔 기술경제적 성과를 추격하기 위해 적극적인 국가적 차원의 과학기술정책을 입안했으며, 이 과정에서 대학을 국가혁신체제의 구성 요소로 통합시켰다. 이 과정에서 내생적 성장이론과 인적자원이론이 등장하여 정책입안자와 OECD 같은 국제기구에 채택되었다. 이 이론들은 교육과 연구개발을 단순한 소비가 아닌, 국가 성장을 이끄는 핵심 투자로 정의했으므로, 각국 정부는 광범위한 국민의 역량을 강화하고 기술 축적을 촉진하기 위해 고등교육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투자의 결과로 고등교육은 급격히 팽창하여 대중화되었고, 민간기업 또한 과학기술 지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연구개발 투자를 대폭 늘리게 되었다. 2차 대전과 냉전을 거치면서 과학기술은 국가로부터 막대한 지원 예산을 확보함에 따라 급격하게 성장했다. 국가와 사회는 과학 연구를 통해 생산된 지식은 경제적⸱사회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직접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과학기술 사업과 과제의 목표, 관리, 결과에 대해서는 과학공동체에 위임하는 자유방임적 방식을 채택했다. 짧은 기간 내에 과학기술은 모든 고도 산업사회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었고, 과학기술 예산은 국가 예산에서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게 되었다.

1970년대가 되면서 과학기술에 대한 국가 예산이 막대한 수준에 도달하게 되자, 정치⸱관료 엘리트들은 연구개발 투자가 공공정책과 경제발전을 위한 기술혁신과 상관성 있게 진행될 것을 요구하게 되었다. 과학기술 인력과 기관은 팽창하였으나 예산 증액이 한계에 부딪히자, 과학정책 입안자들은 연구기관을 지원하는 투자에 대한 책임성과 연구에 대한 품질을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1980년대를 지나면서, 연구개발이 경제성장이나 공공정책과 상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정치적 압력이 커졌고, 정치인뿐 아니라 사회의 일반 대중들도 과학기술의 부정적인 효과와 연구개발 결과의 유용성에 대해서 점점 더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공공부문 연구기관과 연구개발의 규모와 복잡성이 증가하고, 면밀한 감사와 정당화가 필요할 정도로 국가의 과학기술 예산 비율이 커지고, 새로운 산업에서의 기술개발과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전략적 자산으로서 과학기술 연구 결과가 중요해짐에 따라, 기존처럼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대해 과학 엘리트들에게 맡겨 두고만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정치⸱관료 엘리트들은, 과학공동체에 위임하는 자유방임적 접근법에서 과학기술 연구로부터 사회경제적 혜택을 실현해내기 위해서 과학기술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조종과 평가, 감독을 채택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1970년대와 1980년대부터 시작된 과학기술에 대해 상관성, 정당성, 책임성을 요구하는 정책적 전환은 다양한 제도의 도입으로 이어졌다. 1980년대 들어 고등교육의 급격한 팽창으로 공공 예산 부담이 가중되고 투입 예산 대비 성과 저하라는 비판에 직면하자, 미국과 유럽의 각국 정부는 예산의 책무성과 효과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도입했고, 이 과정에서 연구개발 예산의 주도권은 점차 정부에서 민간 부문으로 이동하며 정부 연구개발 투자는 정체되거나 감소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대학·정부·산업체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트리플 힐릭스(Triple Helix) 모델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대학은 전통적인 지식 탐구의 영역을 넘어 지역 및 국가 혁신체제의 중추로서 경제적 가치 창출에 직접 참여할 것을 요구받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대학의 조직적·규범적 경계를 허물었으며, 교수들이 창업과 연구 상업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하는 공적 유인책과 맞물려 대학은 기술과 시장의 논리를 내재화한 지식경제의 핵심 주체가 되었다. 

각국 정부는 과학기술 연구개발과 경제성장 및 공공정책과의 상관성을 강화하기 위해, 변화하는 수요와 그에 대한 과학기술의 기여도, 그리고 과학기술에 대한 거버넌스를 향상시키기 위해, 연구개발 예산 집행체계의 개편과 강하고 경쟁적인 연구평가 시스템을 도입하게 되었다. 국가적 차원의 연구개발 예산 집행체계 개편은 블록펀딩 위주의 연구회 시스템에서 프로젝트 기반의 펀딩 에이전시 중심으로 연구개발 예산 배정 확대, 임무형 연구개발 사업의 증가, 공공정책이나 국가 전략적 사업을 수행하는 사업단과 같은 중간조직들의 등장, 정치적 목적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연구개발 투자 조정 등과 같은 결과들을 가져왔다. 연구평가 시스템은, 과학공동체 외부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외부인에게는 운영이 불투명하기만 한 과학기술 성과와 책임 절차, 자원의 경제적 사용 등을 입증하도록 하고, 과학기술 운영 전반에 경제학적인 규칙을 도입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국 2000년대 초반에 이르러 정책입안자들은 과학기술 지식이 창출하는 실질적인 효과를 검증하고 평가하는 공리주의적 태도를 확고히 굳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국가 차원에서 진행된 연구개발 예산 집행 체계 변화와 연구평가 시스템의 제도화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20여 년 동안 공공부문 과학기술 연구기관과 연구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과학기술 지식 생산의 내용과 방식뿐 아니라 과학공동체의 내부 관계까지 변화하게 만든 것이다. 국가는 연구개발 예산을 통해 사회의 하위체계로서 과학기술의 자율적인 자기조절과 자기조직화를 조종하고 유도하는 체계를 완성하게 되었다. 국가는 과학기술을 실질적으로 포섭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자본의 자기증식을 위해서는 생산양식의 재생산을 위한 권력을 필요로 하고, 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거대기계가 바로 근대국가이다. 루이스 멈퍼드가 이야기한 바와 같이, 국가라는 이 거대기계는 기계가 부품들로 구성되어 있듯이 정부⸱공무원 조직⸱군대⸱검경⸱법원⸱감옥과 같은 억압적 국가장치, 정치⸱문화⸱교육⸱종교⸱언론 등의 영역에 있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등의 요소들로 구성되어 인력을 모으고 조직을 단련하여 인간을 기계의 한 부품처럼 생명 없는 존재로 만들어 절대복종하게 만드는 권력복합체이다. 동시에 산업혁명 이후 확립된 근대국가는 끊임없이 대량생산의 기계발명과 증식을 강화하여 인간이 부품이 되는 거대기계로서의 기술복합체이다. 이 권력과 기술의 복합체, 원형적 거대종합기계가 바로 자본주의의 다른 측면인 근대국가이다. 이것이 자본주의라는 아수라백작의 모습이다. 

독점자본과 근대국가의 두 얼굴을 한 아수라백작은 지금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옷을 입고 전 세계를 활보하고 있다. 이 권력과 기술의 원형적 거대종합기계는 드디어 AI라는 효율적이고 종합적인 운영체계, ‘대량살상 수학무기’를 탑재하게 되었다. 이제 AI는 특히 과학의 실질적 포섭을 더 강화시키고 심화시킬 것이다. 2차 대전의 파시스트들이 정치의 심미화를 추구했다면, 실리콘밸리의 미치광이 ‘미래주의자와 가속주의자’들은 ‘기술의 심미화’를 추구하고 있다. 우리는 유사할 정도의 동일한 방식으로 세계가 ‘기술파시즘’으로 흘러가는 경향을 목도하고 있다. Arie Rip이 개념화한 과학기술의 세 번째 사회적 맥락화는 최악의 상황으로 가고 있다. 발터 벤야민은 “인류의 자기 소외가 인류 스스로의 파괴를 최고의 미적 쾌락으로 체험케 하는 정도”에 까지 이르는 것으로 파시즘을 분석했다. 우리가 기술파시즘의 위협을 분쇄하고 또 다른 전쟁과 야만으로부터 우리를 구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당장은 과학기술의 세 번째 사회적 맥락화를 그 극한까지 가져가는 것, 즉 ‘과학과 기술의 정치화’라는 테제를 철저하고 완전하게 가져가는 것 말고는 그 어떤 답도 보이지 않는다. 

“생산력의 자연스러운 이용이 소유 질서에 의해 저지된다면 기술적 수단과 속도 및 힘의 원천의 증대는 생산력의 부자연스러운 이용으로 치닫게 된다. 부자연적 이용은 자신의 파괴성으로써 다음과 같은 증명을 제시하는 전쟁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사회가 기술을 자신의 유기적 기관으로 삼을 만큼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기술이 사회의 기본적 힘을 장악할 정도로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 가공할 측면에 있어서의 제국주의적 전쟁은 강력한 생산 수단과 생산과정에서의 불충분한 사용 간의 불일치를 통해서 (다른 말로 하면 산업과 판매시장의 결핍을 통해서) 규정된다. 제국주의적 전쟁은 기술의 반란이거니와, 기술은 사회가 자연스러운 재료로써 기술에 부여하지 못했던 요구를 “인간재료”에서 거두어들인다.”

신명호 과학기술평가예측센터 소장

한국과학기술원 학사, 석사, 박사

現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

現 기계공학회 신뢰성부문 이사

前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정책위원장

前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과학기술특별위원회 위원장

前 해병대 마린온 추락사고 민관군 합동조사위원회 민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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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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