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희의 人사이드] '용산의 복지대모' 김효정 남영동장

정수희 기자 / 2024-05-30 15:45:07
"선배 없이 복지 업무 시작해 30년 넘게 외길"
"'쪽방촌' 동자동 주민도 우리 동네 일원 자부심 느끼게 해"
복지직 후배들 위한 지침서, 복지정보편람 펴내 큰 보람
'정신건강 사회복지사' 동 배치, 복지직 공무원 마음돌봄 필요
▲ 김효정 용산구 남영동장이 CWN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정수희 기자

[CWN 정수희 기자] 뚜벅뚜벅 걷다 보니 길이 나고 뒤따르는 이도 생겼다. 개척자이자 길잡이다.

"30여년 전 입직했을 당시 사회복지에 대한 개념도 생소하고 이 분야 선배도 없었기에 복지 관련 업무면 모두들 저를 찾았습니다. 열심히 일하다 보니 지금은 복지 전문가로 인정도 받고 어떤 분들은 사회복지직 지역공무원의 대모라는 과분한 별칭도 붙여주셨어요."

지난 29일 서울시 용산구 남영동주민센터에서 만난 김효정 남영동장은 수줍은 듯 미소지으면서도 어려운 지역 복지 실태를 설명할 때는 매우 단단해 보였다.

지난 1년 간 함께 일하며 그를 지켜봐 온 정경숙 행정민원팀 주무관은 "따뜻한 리더십을 갖고 솔선수범하는 분이다. 많이 본받고 싶다"고 소개했다.

 

▲ 김효정 남영동장의 아이디어로 제작된 종이상자 배출방법 안내문. 사진=정수희 기자

 ■ 자신을 소개해달라.

- 1991년 7월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임용됐다. 그동안 구청에서 사회복지과, 가정복지과, 주민생활지원과를 거쳐 지난 2022년부터 1년 반가량 복지정책과장을 지내다가 남영동장으로 온 지는 1년 됐다. 동주민센터에서도 일해 왔는데 남영동은 7급 주무관 때 근무했던 곳이기도 하다. '남영동' 하면 '쪽방촌'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힘들겠다고들 하는데 경험을 해봐선지 체감상 크게 힘들진 않다.

주민들을 자주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매일 순찰을 돌며 현황 파악을 한다. 쾌적한 주거 환경을 위해 무단투기 된 쓰레기가 보이면 직접 치운다. 박희영 구청장 취임 후 청소 기동반과 함께 깨끗한 도시 조성에 힘쓰고 있다. 쓰레기에 진심인 편이다.

관할 지역은 주택가인 갈월동과 약 880가구가 거주하는 쪽방 지역인 동자동, 상가가 많이 자리한 남영동이다.

■ 쪽방 지역은 어떤 곳인지.

- 물론 열악한 곳이다. 그래도 언론에 늘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쳐 안타깝다. 이곳 주민들도 자조모임과 협동조합을 구성하고 명절에 공원에서 무연고자 차례를 지내주기도 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쪽방상담소 프로그램을 통해 전시회에 참여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소외된 쪽방 지역 주민들이 구에서 주관하는 체육대회에 선수로 참가하고 주민자율청소단에 참여해 우리 동네 일원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도록 계속해서 돕고 있다.

▲ 남영동 주민자율청소단 업무협약식. 휄체어 탄 이는 동자동 주민. 사진=남영동주민센터

■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

- 작년 한 어르신이 동자동 새꿈어린이 공원에 폐지를 한가득 쌓아두고 있어서 민원이 있었다. 냄새도 나고 벌레도 꼬여서 주민들이 불편해했다. 그래서 찾아뵈니 중국동포였다. 이전엔 식당 일을 도왔는데 연세도 들고 힘에 부쳐서 폐지와 고물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비위생적이고 미관상으로도 좋지 않은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어르신을 설득해 직원들과 함께 적치된 물건들을 치우고 고물상에 가져가 판 돈을 어르신에게 전달했다.

폐지와 고물 수집을 해도 생활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그런데 어르신 국적이 중국이어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보호할 법적 방법이 없다. 그나마 용산복지재단의 일시지원금과 교회의 도움으로 소액을 지원받았지만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서 복지재단의 지원과 민간 자원 연계가 필요한 상황이다. 요즘 가장 마음이 쓰이는 분이다.

▲ 김효정 남영동장(오른쪽)이 폐지 수집 어르신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남영동주민센터

■ 보람된 일이 있다면?

-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엮어 2021년 책을 펴냈다.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의 지원으로 가능했는데 나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도 됐다. 직접 '작은 의자를 놓아드릴게요'라는 제목도 짓고 삽화까지 그려 넣었다.

2008년 복지조사팀장으로 있으면서 복지 관련 정보를 총망라해 복지 인력이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게 있으면 좋겠다 싶어 '용산복지정보편람'을 만들었다. 2009년부터 배포해 사용되고 있는데 타 시·군·구에서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 힘들었던 적도 있는지.

- 인사도 하기 전에 화분을 던지며 화를 내거나 폭언하는 민원인, 고질 민원을 반복하거나 계속해서 현금 지원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민원인을 대할 때다.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서 설득하거나 정도가 심한 악성 민원의 경우 경찰 연계 등으로 대응한다.

또 예전엔 일대일 맞춤형 밀착 상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장시간 민원 상담을 하고 있으면 나무라는 경우도 있었다.

■ 개선 방안에 대한 견해가 있다면.

- 갈수록 1인 가구와 고립 가구, 은둔형 외톨이가 늘어나는데 정신적 어려움을 가진 분들을 발굴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분들에 대한 인력을 보강하면 좋겠다.

또 현재 건강관리과 정신건강팀, 용산구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지만 의료기관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이용을 꺼린다. 좀 더 쉽게 접근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정신건강 사회복지사'는 사회복지사이면서 정신건강을 돌볼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분들이다. 방문간호사처럼 각 동에 이분들이 배치되고 자체 프로그램도 운영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면 좋겠다.

무엇보다 복지 업무 담당자들부터 자신의 마음을 돌볼 수 있어야 한다. 후배들에게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가길 추천한다.

▲김효정 동장이 사회복지직 후배들을 위해 펴낸 책. 사진=정수희 기자

■ 개인적 바람은.

- 6월 말까지 근무하고 공로연수에 들어가면 좋아하는 소설책을 밤새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된다. 영어와 일본어 같은 외국어 공부를 좀 더 해서 원서로 읽고 싶다. 은퇴 생활을 기록해 보고도 싶다.

아이들을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부터 보육시설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대학 때는 소년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바른 길로 가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앞으로 아이들을 위한 일에 공헌하고 싶다.

CWN 정수희 기자
jsh@cw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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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희 기자 / 정치경제국

정치/사회/지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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