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의 새 아침이 밝았지만, 우리 사회의 그늘은 여전히 짙다. OECD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는 이제 숫자를 넘어 우리 이웃의 아픈 일상이 되었고, 1인 가구 급증 속 '고독사'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현상이 되었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40~50대 자살률이 급증하고 있으며, 청년층의 우울증 진단율은 5년 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수십 년간 성직자로서, 그리고 생명존중운동의 최전선에서 삶과 죽음의 문턱을 지켜본 나는 오늘 우리 사회에 묻는다. "우리는 과연 서로의 삶을 제대로 살리고, 서로의 죽음을 제대로 배웅하고 있는가?"
'살림'의 경제를 넘어 '살림'의 영성으로
그동안 우리 사회는 경제적 풍요를 향해 달려왔으나, 물질이 마음의 빈곤까지 채워주지는 못했다. 자살 예방은 단순히 '죽지 않게 막는 것'에 그쳐선 안 된다. 그 사람이 왜 살아야 하는지, 존재 자체로 얼마나 존귀한지를 스스로 깨닫게 돕는 '영적 자존감'의 회복이 핵심이다.
정부의 '제5차 자살예방 기본계획'이 발표되었지만, 효과를 거두려면 예산과 인력을 넘어선 무언가가 필요하다. 한국종교인연대와 생명존중시민회의의 활동 경험은 이를 증명한다. 종교의 경계를 넘어 생명이라는 하나의 가치 앞에 섰을 때, 우리는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나를 비워 타인의 고통에 공명하는 '무아봉공(無我奉公)'의 마음이 전달될 때, 절망에 빠진 이는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는다. 이제 국가는 복지 제도를 넘어, 개인의 실존적 허기를 채워줄 '영성 케어'를 사회 시스템 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닌 '마지막 성적표’
죽음을 대하는 인식 또한 바뀌어야 한다. 현대의 장례식은 고인에 대한 깊은 애도와 영적 갈무리가 사라진 채, 상업적 절차만 남은 '치우는 예식'으로 변질되고 있다. 연간 3천 명을 넘어선 고독사와 증가하는 무연고 장례는 우리 사회의 관계망이 파산했음을 알리는 경고음이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존엄사법' 개정안과 '고독사 예방법' 강화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죽음은 생의 단절이 아니라, 한 존재의 서사가 우주적 귀결로 돌아가는 가장 장엄한 마침표여야 한다. 고인이 남긴 삶의 궤적을 아름답게 정리하고, 유족이 슬픔을 넘어 감사와 평화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 그것이 진정한 '웰다잉(Well-Dying·존업사)'의 완성이다. 종교계가 현장의 장례 시스템과 결합하고 협력할 때, 상업적 장례는 비로소 '존엄한 이별의 문화'로 승화될 수 있다.
2026년, '존엄한 공동체'를 위한 사회적 제안
인생 이모작을 시작하며 나는 한국종교인연대와 생명존중시민회의의 힘을 모아 몇 가지 구체적인 실천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종교 간 벽을 허문 '범종교적 생명 케어 네트워크'를 상설화해야 한다. 불교·기독교·천주교·원불교 등 각 종교 시설이 심리적 위기 가구를 보듬는 지역사회의 '영적 보건소'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교리의 차이를 넘어 생명 앞에 하나 되는 연대가 필요하다.
둘째, 시민사회 차원에서 '추모 공동체'를 활성화해야 한다. 고독사가 비극으로 끝나지 않도록 시민들이 상주가 되어주는 마을 장례를 제도화하여, 누구나 품격 있는 갈무리를 받을 '배웅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셋째, 정부와 기업(상조), 종교계, 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생명존중 컨트롤타워'를 실질적으로 가동해야 한다. 인공지능(AI) 시대, 디지털 격차 속에서 더욱 심화하는 고립과 소외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인간적 연대다.
나고 죽는 일은 인생의 가장 큰일(生死大事)이다. 생명을 일깨우는 '살림'과 삶을 예우하는 '갈무리'가 하나로 만날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존엄한 공동체'가 될 것이다. 나는 이제 교당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세상이라는 더 큰 현장에서 이 무아봉공의 여정을 이어가려 한다. 찬란한 생명의 빛이 꺼지지 않도록, 그리고 떠나는 영혼들이 눈부신 귀가(歸家)를 할 수 있도록, 기꺼이 그 길의 따뜻한 동행자가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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