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은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어떻게든 보여주려 애쓴다. SNS에 올린 한 장의 사진, 명함에 적힌 직함, 타고 다니는 차, 입고 있는 옷, 들고 있는 가방 등이 한 사람의 이력서처럼 쓰이고 있다. 하지만 애써 내세운 화려함의 이면에는 종종 불안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만 자신의 존재가 확인되는 순간, 마음은 타인의 평가에 끌려다니기 시작하고, 남들의 눈을 의식할수록 스스로의 기준은 흔들리게 되면서 결국 ‘나’라는 중심은 사라져버리게 된다.
이 불안은 단지 외적인 성공이나 물질에만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들은 성품으로, 혹은 도덕성으로 자신을 증명하려고 애쓴다. 이런 사람은 주변으로부터 칭찬을 받아야 인정받는 것이라는 조용한 절박함이 자리하고 있다. 타인의 평가에 기댄 선함은 쉽게 흔들리게 되는데, 칭찬이 멈추면 자신에 대한 믿음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진짜 자신감은 ‘보여주는 용기’가 아니라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평안’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누군가가 조용히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이유는, 이미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신의 가치를 부각시키기 위해 안달할수록 그 안에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겉으로는 당당하지만 속으로는 늘 불안한 사람, 바깥으로 빛을 쏘지만 안쪽이 텅 빈 사람인 것이다.
‘당당한 척’과 ‘당당함’은 다르다. 전자는 시선을 향하고, 후자는 내면을 향한다. 정말 단단한 사람은 평가받는 자리가 아니라 조용한 자리에서 힘을 낸다. 자신의 부족함을 숨기려 애쓰기보다, 그 결핍을 인정하는 순간 오히려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완벽해야 사람답다고 믿는 세상에서 완벽하지 않음을 말할 줄 아는 용기야말로 진짜 자기 확신이다.
요즘 사회는 개인마저 상품처럼 포장해야 경쟁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끊임없이 자신을 포장하는 삶은 결국 소모적이다. 나를 꾸미는 데 에너지를 쏟다 보면, 정작 나 자신과 마주할 시간이 사라진다. 중요한 건 타인에게 비치는 이미지가 아니라, 혼자 있을 때의 나를 사랑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이다.
진짜 사람은 사실 자신을 증명하지 않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에겐 이미 자신을 믿는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선택받지 않아도, 누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기죽지 않고, 칭찬받지 않아도 흐트러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겉모습이 아니라 내용으로 존재하는 것을 상징한다. 반면 진짜처럼 보이려는 사람은 끊임없이 비교하고, 더 나아 보이기 위해 자신을 몰아붙이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빈틈은 커지고 그 빈틈 사이로 유치함은 넘쳐흐른다.
자기 확신은 누구나 바라는 감정이지만, 그 확신은 외부의 인정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 타인의 시선을 내려놓는 순간 조금씩 자라게 된다. ‘나는 지금 이대로 괜찮다’는 단순한 믿음이 내면의 기둥이 되어주게 된다.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에 떳떳한 삶을 시작한다. 바로 진짜 사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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