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호 칼럼] 과학의 시작과 과학 지식 생산양식의 변화 ①

신현준 기자 / 2026-03-03 15:46:58

과학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처럼 과학도 시작이 있다. 문화의 다른 영역과 뒤섞여 혼재되어 있다가 과학이라고 부를 만한 형태로 드러나기 시작한 시점이 있다. 자석에 마늘 액을 바르면 자력이 감소한다는 주장을 간단한 실험을 통해 확인도 하지 않고, 대단한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반복해서 자신들의 저작에 베껴 쓰는 행태가 반복되었고, 사람들은 그걸 그대로 믿었다. 이걸 두고 과학이라고 할 수는 없다. 

과학은 불변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생성해 가는 것이다. 과학적 지식만이 확실한 지식이 아니며, 확실한 지식을 생산하는 다양한 지식 생산양식들이 존재한다. 과학적 지식은 유효한 지식으로서 지식이 생산된 후 다른 장소와 시간에서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하고 지역적으로 생산된 경험과 발견들이 세계적인 수준에서 보편적으로 유효하다는 것이 입증되어야 한다. 즉, 생산된 과학 지식은 지역적인 차원에서 확실한 결과를 보장해야 하고,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수준으로 확장된 지식은 다시 구체적인 상황에서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회적이고 인식론적인 관점에서 과학은 지역적-국제적 체제이다. 지역적 단위는 “연구” (researching)를 수행하고 국제적 수준에서는 “과학화” (sciencing)를 수행한다. 실험실과 연구소, 워크숍 등에서 수행되는 지역 단위의 활동을 “탐구적 실천” (search practices)이라 하고, 국제적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광범위한 분석과 유효화, 지식의 구조화 등의 활동을 “인식론적 실천” (epistemic practices)이라고 한다. 국제적 수준에서는 과학 지식의 저장고라 부를 수 있는 과학적이고 인식론적인 장이 구성되며, 지역적인 과학적 실천들은 확립된 경험과 규칙들의 규범을 따른다. 지역적 단위와 국제적 수준 간의 상호작용과 그 상호작용의 조정은 지역적 단위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이루어진다. 

과학 지식 생산 양식은 14 ~ 16세기의 르네상스라는 용광로에서 시작되어 과학혁명이 본격화하는 17세기 후반이 되면서는 국제적 수준에서의 분과별 과학 공동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9세기 말을 지나면서 부르주아 산업사회의 등장과 함께 대학을 중심으로 한 과학 지식 생산의 제도화와 과학의 전문화, 과학의 주된 후원자로서 국가의 역할 확립, 중립적이고 순수한 과학의 이미지 구축 등이 진행된다. 19세기 말에 확립된 제도화되고 전문화된 과학 지식 생산양식은 현재까지 지배적인 방식으로 존속하고 있다. 

우리가 그래도 과학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시작된 것은 17세기 과학혁명부터이다. 15세기 르네상스, 16세기 종교개혁, 17세기 과학혁명, 18세기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숨 가쁜 격변의 한가운데에 17세기 과학혁명이 있다. 서구 과학은 14 ~ 16세기의 유럽의 르네상스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다양한 지식은 서로의 명확한 경계나 규범을 찾기 어려웠고 혼란스럽게 얽혀 있었다. 중세의 대학이 있었고 인문학자와 예술가, 공학자들은 여행했다. 또한 연금술사와 점성술사, 협잡꾼, 돌팔이 약장수들도 있었다. 왕자와 부유한 상인들은 그들의 후원자였고 학자들과 장인들은 후원자들이 원하는 바에 따라 작업을 했다. 르네상스 때부터 지식 생산의 다양한 요소들이 부분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보일 (Boyle)에 의한 실험이 수행될 수 있는 실험실과 같은 미시적 보호 공간이 도입되었고, 각국의 왕들에 의한 거시적 차원의 보호 공간도 구축되기 시작했다. 

또한, 유럽의 과학은 15세기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이루어진 기술의 발전을 기반으로 한다. 16세기가 되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에 의한 고대의 권위적 지식을 의심하고 실험과 경험을 통해 검증하기 시작한다. 16세기에는 외과학, 해부학, 식물학, 광산업, 야금술, 시금법, 상업수학, 군사기술, 기계학과 역학, 천문학, 지리학 등의 영역에서 자연현상을 계량적으로 측정하는 작업이 기술자와 상인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폭발적으로 이루어진다. 17세기에 자연철학은 본질주의와 이념형을 찾는 스콜라철학에서 완전히 벗어나 측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상을 정량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수학적 법칙을 찾아내는 것으로 바뀐다. 갈릴레오나 데카르트의 기계론으로는 결코 도달하지 못했던, 자력과 중력과 같은 원격력이라는 힘의 법칙을 수리과학으로 표현하고 천체의 운동, 조수간만, 지구의 형상을 설명하는 데 성공했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은 근대과학의 전형을 확립했고, 17세기 과학혁명이 시작되었다. 유럽은 그때까지 지구 어느 곳에서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실천을 시작했다. 자연현상을 계량적으로 측정하고 이에 바탕을 두어 현상을 정량적으로 설명하는 수학적 법칙을 찾아내는 것. 이것이 과학의 시작이다. 

17세기의 과학혁명을 통해 적합한 과학적 절차들이 도입되고 기계공학과 장인들 간의 경계가 확정되기 시작했다. ‘고급 과학’과 ‘저급 과학’의 구분이 점점 더 심화하면서 물리학은 분과 과학 중에서 가장 지배적인 과학이 되었다. 이러한 각 분과 과학들의 합리적인 지식 생산 양식은 르네상스라는 비옥한 땅에서 만들어졌다. 르네상스 시대의 지식 생산이 갖는 풍부함, 다양성, 개방성은 과학혁명을 위한 기반이 되었을 뿐 아니라 고급 과학이 출현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전환의 과정에서 학자와 예술가들의 후원자들은 현대 과학에서 핵심적인 제도인 “동료평가 (peer review)”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르네상스 시대 유럽에서 후원자들이 그림, 조각, 공학적 사업 등을 후원할 때 인문학자나 르네상스의 학자 등 다른 지식 그룹에 조언을 받았는데, 이들은 그들 스스로가 다른 후원자들로부터 후원을 받기도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후원과 조언의 순환은 현재 우리가 “동료”라고 부르는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를 만들어 냈고 후원자들에게 조언을 하는 “동료평가”라고 하는 실천적 제도를 확립했다. 이 때 확립된 동료평가는 현재에도 학술지의 편집자와 발행자들 혹은 펀딩 에이전시에서 수행하고 있는 방법이다.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상호작용이 지역적 맥락과 이해관계들과 연계되기 시작하면서 텍스트와 그 텍스트의 내용을 순환하면서 연계되는 가상의 공동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7세기 후반부터는 서간의 형식으로 학술지가 등장하면서 과학자들의 국제적 네트워크가 형성될 수 있도록 했다. 18세기의 과학 사회는 연구보고서를 출간하고 후원자들과 소속 구성원들을 연결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계몽주의 운동을 거치면서 각 나라는 특정한 후원자로부터 독립적으로 과학 지식 생산에 대한 후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총체적 정당성을 확립했다. 18세기에는 광업, 야금학, 의학, 천문학 데이터 수집 등의 특정 분야들이 발전하고 국제적 차원에서 연계되며 일반 이론화하는 작업들이 진행되었다. 화학의 경우에는 전형적인 분과 과학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분과 과학과 전문가들이 18세기 후반에 등장하고 19세기 후반에는 고등교육과 과학의 전문화가 촉진되었다. 19세기 후반에는 분과 과학은 제도화되었고 대학의 학과와 도서관에서 분류 체계로 확립되었다. 과학의 전문화가 분과 학문을 통해 제도적 인프라 구조를 구축하게 된 것이다. 지역적으로 생산된 지식은 과학 논문이라는 형식을 통해 더 국제적인 지식 생산 체계로 구성되었다. 연구 분야, 전문가, 분과 과학 등은 국제적인 과학적 실천을 위한 중범위 수준의 보호 공간이 되었다. 과학적 실천은 학계, 사적 후원자들, 국가, 전문가 집단 등으로부터 다양하고 분산적으로 후원을 받음으로써 후원으로부터 독립적이 되어 갔다. 1870년대에 과학의 대변인들은 과학은 국가로부터 지원받아야 한다고 요구했고, 국가는 즉각 반응해서 과학의 보편적인 후원자가 되었다. 동시에 대학은 연구를 수행하고 학위를 수여하기 시작했다. 국가의 역할이 점점 증가하자 국가적 과학공동체라는 개념이 강화되었고, 각 국가의 과학공동체는 대학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국가에 로비와 조언을 하는 제도화된 채널을 구축한 과학 조직들이 설립되었다. 

(다음 번 칼럼에서 현대의 과학 지식 생산양식의 변화를 정리합니다.)

신명호 과학기술평가예측센터 소장
前 한국과학기술원 학사, 석사, 박사

前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

前 기계공학회 신뢰성부문 이사

前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정책위원장

前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과학기술특별위원회 위원장

前 해병대 마린온 추락사고 민관군 합동조사위원회 민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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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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